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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짧은 생에를 잠깐 훑어보자. 초등학교때 학생들을 왜 공부를 열심히 했나. 일단 열심히 하는게 좋으니깐 열심히 했겠지. 이후 중학교때는 왜 열심히 했나. 좋은 특목고 고등학교 가려고. 특목고는 왜 가고 싶어했나. 서연고 의대/치대 가려고.

너무 지루한 패턴이지만 한 번만 더 짚어보자. 서연고 의치대에 들어가고 나면 얼마나 더 빡셀까. 그리고 그곳은 왜 가려고 했는가. 좋은 직장의 좋은 연봉 받으면서 살려고. 좋은 연봉은 왜 목표가 되었는가. 그리고 그 연봉을 받기까지 얼마나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 혹은 무엇인가를 버려야 하는가. 좋은 연봉을 받으면 인생 살기가 편해지니깐. 다른사람으로부터 존경받으니깐. 돈 많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좋아 보이니깐. 결국 좋음을 위해 살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고생하지 않기 위해서. 억울하지 않기 위해서. 행복하기 위해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방어 기제가 작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욕망의 기제가 작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기도 하겠다.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방어적이었나. 무시당하지 않는 것 - 타인으로부터 내 자존감을 지키기 고생하지 않는 것 -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고 정신적으로 힘들지 않는 것 억울하지 않는 것 -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잡아 먹히는 것

우리는 어떤 것을 욕망하고 있었나. 행복하는 것 - 만족과 기쁨을 느끼고 있는 상황

좋은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해야하는가. 좋은 대학교를 들어가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해야 하는가. 좋은 직장을 가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해야 하는가. 좋은 직장을 들어 간 후 승진 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해야 하는가. 좋은 연봉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 모든 좋음을 위해 무엇을 버려야만 하는가. 좋은 고등학교를 위해 자유와 우정을 버리진 않았는가. 좋은 대학교를 들어가기 위해 앎의 기쁨과 창의성을 버리진 않았는가. 좋은 직장을 가기 위해 청춘과 낭만을 버리진 않았는가. 좋은 연봉을 얻기 위해 인간성을 버리진 않았는가.

모든 과정중에서 얼만큼 얻고 얼만큼 버렸는가 혹은 잃었는가. 그리고 지금의 나는 무엇을 향해 무엇을 얻어가고 있으며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가. 결국 인생의 끝에 무엇을 남기기 위해 오늘도 살아가는 것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내가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을 위함인가.

내가 자녀에게 심어주어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좋은 연봉을 가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끊임없이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과정 속에서 결국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인생의 방향은 어딘가에 대해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도와주기보다 너는 결국 무엇을 추구하며 살 것인지 스스로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나는 나라는 자식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가. 너는 왜 재밌는 공부를 하면서도 성적이 나올때면 좌절하고 우쭐해 하는가. 왜 자꾸 성공을 하려고 하는가. 1등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려고 하는가. 너는 왜 열심히 하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열심히 하고 있는가. 결국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목표를 안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잊고 다시 고민하게 된다. 또 다른 답을 찾으려고 하기도 한다. 좌절할때면, 다른 상황이 다시 닥쳐올때면, 내가 내린 결정, 내가 바라보고 있는 목표가 보이지 않을때가 생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두려움에서 온다. 아직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하지만 돈을 벌지 못했을 때 사람들이 불행해 하던 모습에 두려움이 엄습한다. 나 또한 돈을 많이 벌지 못하면 얼마나 불행할까 두려워진다. 행복해 하기 위해 돈을 잘 벌고 싶다 보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면 불행할까 두려운 것이다.

불행에는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다. 행복보다 분해하기 쉬운 단어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일단 분해하기 좋은 것들이 바로바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는 것.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 남들에게 무시당하는 것.

돈이 많이 없으면 많이 움직여야 한다. 부지런해야하는데 인간은 부지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남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자존감이 세워지지 않아 사람들은 인정을 받고자 하는 것 같다. 남들에게 무시를 당하면 서러움이 오고 자존감이 무너져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만 같이 느껴진다.

전쟁중인 나라에 사는 아이들. 가난에 허덕이는 나라에 사는 아이들. 지독한 병에 걸려 있는 아이들.

나는 두려움에 대해, 그 두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하는 나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극한의 상황이 아닌 먹고 살만한 여유로운 환경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나오는 고민은 과연 가치있는 고민이 될 수 있는가. 진정 삶의 의미를 꿰뚫고 삶을 바라보기 위한 몸짓에 해당될 수 있는가. 아니면 그저 삶 앞에 작은 어리광에 불과한것인가.

어차피 부지런해져야 할텐데 내가 부지런할 수 있는 영역에서 부지런해보자. 재밌는 부지런함이 존재할 수 있는 내 영역에서 일을 하고 먹고살자. 남들에게 인정받아서 뭣하나. 나를 인정해주는 하나님을 의지하자. 그리고 나를 인정해주는 가족을 만들자. 그리고 현재의 가족을 생각하자. 남들에게 무시받는다고 내 존재 가치가 0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지금 무시받고 있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최악으로 살지 않는 이상 적은 사람들로부터 오는 무시는 내가 무시하고 살아가자.

구글에 가지 않아도 된다. 최상의 조건의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된다.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실 것이며 먹을만큼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다.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남들보다 작은 집에 살게 되고 내 자식이 남들보다 덜 교육을 받게 된다면 좌절하지 말자. 욕심내어 더 살려고 하지 말자. 오히려 자식에게 덜 교육하는 것 - 즉 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게 하는 일반적인 방법을 택하지 못한 것 -에 힘들어하지말고 오히려 자식과 내가 가진 가치관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자. 남들과 비교하면서 살지 않는 환경을 만들도록 하자.

석사는 왜 시작했는가. 보안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서. 좋은 환경(돈 많고 편하고 자기 만족 느낄 수 있는)에서 살기 위해서. 왜 나는 지금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는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가. 성적이 1등이 아닐까봐. A를 못받을까봐. 학점 3.8/4.0이상을 못받을까봐. 왜 성적과 학점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나. 취업이 안 될까봐. 정확히는 구글같은 좋은 기업에서 안 될까봐. 사회에서는 학점을 그렇게 많이 안 본다고 다 알고 있으면서 나는 왜 두려움을 느끼는가. 한국사회에서 늘 성적을 잘 받아야만 된다고 느껴왔고 먼 훗날 내 성적표를 보고 사람들이 투자할 것 같아서. 다시 생각해보자. 이후에는 내 대학원 성적가지고 나를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성적이 못나왔다를 보기보다 그때까지 했는 다른 프로젝트 이력을 볼것이다. 그리고 성적이 4.0이라고 나를 더 좋게 보지도 않을 것이다. 그걸로 그 때 자랑하면 그게 더 웃긴 일이다. 학점은 첫 취업에 들어갈때까지만 유요하다. 하지만 첫 취업에서 학점이 그리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고 이미 배웠다. 3.3만 넘으면 된다고 했다. 여기서는 이직에 이직을 더하면 되지 않는가. 결국 내가 바라보아야 할 곳은 더 나은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것이지 고작 점수에 목매면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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